공간 · No. 04
북향 창을 고른 이유
스튜디오의 네 방은 모두 다른 방위를 봅니다. 빛의 온도가 회기에 개입하는 방식에 대하여.
- 글
- 이서한
- 발행
- 2026-06-30
- 분량
- 4분
- 재료
- 파스텔
파스텔 · 겹칠수록 부드러워진다
부동산에서 북향은 감점 요인입니다. 그런데 여백에서 개인 회기를 가장 많이 진행하는 방은 북향입니다. 처음 공간을 구할 때 중개인이 몇 번이나 다시 물었습니다. 정말 이쪽이 맞느냐고.
북향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하루 종일 온도가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직사광이 없기 때문에 오전 열한 시와 오후 네 시의 종이 색이 같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회기는 대체로 90분이고 그 90분 동안 종이 위의 색이 변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남향 방에서 수채 작업을 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림이 변한 것인지 빛이 변한 것인지 구분되지 않습니다. 통제를 놓는 연습을 하러 온 사람에게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하나 더 얹는 셈입니다.
방마다 다른 방위
반대로 목탄과 파스텔을 쓰는 마른 방은 서향입니다. 오후에 빛이 길게 눕는 방이고, 벽 한 면 전체가 작업면입니다. 서서 그리는 재료이기 때문에 빛이 옆에서 들어와 종이의 결과 가루의 두께가 보이는 편이 낫습니다. 목탄 작업에서 사람들이 가장 놀라는 순간은 자기가 문지른 회색이 얼마나 여러 겹인지를 처음 알아차릴 때인데, 그건 빛이 낮게 들어와야 보입니다.
공간은 배경이 아닙니다. 회기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미리 결정하는 조건입니다.
흙의 방은 남향입니다. 여기서는 빛이 변해도 상관없습니다. 점토는 마르는 재료이고, 마르는 동안 색이 옅어지는 것을 눈으로 보는 편이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이 방에는 큰 나무 상판 하나와 등받이 없는 의자만 두었습니다. 등받이가 없는 이유는 몸을 기대면 손이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방은 동향이고, 아무 재료도 없습니다. 회기 전후에 혼자 앉아 있는 자리이며 예약 없이 쓸 수 있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바로 지하철을 타기 어려운 날이 있습니다. 그 15분을 위한 방입니다. 이 방의 이름이 스튜디오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글 이서한 · 여백 YEOBAEK